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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한 짝만 들고 돌아간 달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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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원사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12-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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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 한 짝만 들고 돌아간 달마 대사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달마 대사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려고 합니다. 

  원래 달마 대사는 1,500년 전에 인도에 있던 향지국이라는 나라의 왕자였습니다. 그런데 '아, 모든 것이 덧없구나. 위없는 영원한 깨달음을 얻어야겠다.' 하고 출가를 합니다. 그 후 열심히 수행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요. 그래서 달마 대사를 '제2의 부처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달마 대사는 '나의 법은 저 동쪽 땅과 인연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법을 전해야 되겠다.' 하고 동쪽 땅, 중국으로 와 법을 펼칩니다. 그런데 달마 대사의 법이 너무나 급진적이고 심오해서 많은 불자들이 그 진실한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대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달마 대사 이후로 훌륭한 제자들이 나오면서 오늘날 우리가 '선종(禪宗)' 이라 말하는 큰 종파가 형성되게 됩니다.

  훗날 달마 대사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나를 화장하지 말고 관에 묻어다오. 그리고 내가 신던 신발을 관 안에 넣어다오."

  제자는 신발을 관에 넣은 다음 웅이산에서 스승의 장례를 치릅니다. 

  이후 3년이 지납니다.

  달마대사가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 중국 사신으로 인도에 파견된 '송운' 이라는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총령(葱嶺), 그러니까 지금의 파미르 고원을 넘던 송운은 그곳에서 웬 뚱뚱하고 털이 엄청나게 많은 스님이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송운이 보니 그 모습이 참 괴이하더래요. 어깨에 걸친 막대기 끝엔 신발 한 짝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맨발로 터벅터벅 걸어 오는 모습이 저게 중인가, 거지인가 싶었겠죠.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그 사람이 달마 대사였다고 해요. 그동안 인도에 가 있느라 달마 대사가 세상을 떠난 줄 몰랐던 송운이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이고, 대사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중국 땅과의 인연이 다하여 고향인 인도로 돌아가는 길이오."

  "그러시군요. 저도 고향인 중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둘은 나중을 기약하고 헤어졌어요.

  송운은 중국에 돌아온 뒤 황제를 만나 인도에서 겪은 일을 보고하고, 돌아오는 길에 달마 대사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황제는 황당했겠지요.

  "달마 대사는 3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슨 소리냐?"

  "아닙니다, 폐하 제가 분명 총령에서 달마 대사를 만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화가 났습니다. 송운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과거에는 황제 앞에서 말 한 마디 잘못해도 일족이 몰살당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송운은 그 자리에서 무릅을 꿇고 말했습니다.

  "폐하,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저의 이 억을함을 풀어 주십시오."

  그래서 황제는 웅이산에 묻은 달마의 관을 꺼내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황제는 사람들을 데리고 웅이산으로 행차하여 달마의 무덤을 판 다음 관 뚜껑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관 안에 달마 대사의 시체는 온데간데 없고 신발 한 짝만 남아 있더래요.

  아까 총령을 넘어오던 달마 대사의 막대기에 무엇이 걸려 있었다고 했나요? 맞습니다. 신발 한 짝이지요.

  여러분 선종은 이 신발 한 짝에도 어떤 깨달음의 경지가 숨겨져 있다고 봅니다. 왜 달마 대사는 굳이 신발 한 짝을 들고 갔을까? 이 도리를 아는가?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알면 안됩니다. 우리 중생이 가닿지 못한 엄청난 경지가 숨겨져 있다고 하니까요.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쑥 내밀고, 죽어었던 달마 대사가 신발 한 짝만 들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삶과 죽음에 자유자재한 경지를 표현합니다. 이것이 생사를 해탈한 깨달은 분들의 모습이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스님들이 쓰는 의식문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신령스러운 근원은 맑고 고요하여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미묘한 본체는 둥글고 밝으니

    그 어디에 삶과 죽음이 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관 밖으로 두 발을 가섭에게 보이셨고,

    달마 대사는 신 한 짝 들고 총령 고개를 넘으셨도다.


우리 불교에는 열심히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었던 분들, 그래서 삶과 죽음에 자유로웠던 분들이 많습니다. 부처님과 달마 대사는 그런 분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분들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물을 거예요.

  "스님. 그런 건 부처님이나 달마 대사같이 위대한 분들이나 가능하지 머리 긴 재가신자들한테 가능하겠습니까?"

  과연 그럴까요?


         ㅡ    기도 기피 이야기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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